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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했던 호치민에서의 3.1일 (0.1일차) 산책 일지

호치미 특가 항공권이 뜬거 보고 두번 생각 안하고 질렀다. 

일정변경 불가, 취소 불가, 양도 불가라는 조건이 걸려있는 7만원짜리 티켓이었다. 

그러나 막상 지르고 나니 이래저래 골치가 아팠다. 저렴한 티켓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 생각없이 행동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사표를 제출한게 지난 4월 즈음이다. 퇴직을 생각한게 2월이고, 그 사이에 고심하고 고심해서 5월까지 일하겠다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나는 일상에, 특히 주 단위로 돌아가는 주간지의 일상에 지쳐있었다.

월요일 출근해서 한주를 준비하고, 주중에 약속을 잡고, 사람들을 만나서 '요즘 뭐 재미있는거 없어요?' 라고 말하는데 지쳐있었다. 

금요일 마감이 끝나면 온 몸에 피로감이 가득한 상태로 술냄새 나는 지하철을 타는것도 지쳐있었고, 주말동안 재미을 찾아 시간을 때우는데에도 지쳐있었다.

나는 도망가고 싶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도망가서 현실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달 넘는 인도차이나 반도 자전거 여행을 준비했었다.

뭐 결국 사표는 반려되고, 어영부영 아무일 없다는 듯 회사에 다니던 상황에서 갑자기 나온 특가항공권은 가뭄속에 단비 같았다. 

그렇게 출발 일주일 전에 항공권을 구입하고 나는 베트남으로 출발했다.

출발일 까지 정확히 호치민에 가서 무엇을 할지 정하지 못했다. 첫날 투숙할 호텔만 예약해놓은 상태였고, 가서 뭘 할지, 뭘 볼지 전혀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마감을 땡겨야 했기 때문이다. 금요일 오후 8시 출국이라 회사에서 4시 정도에는 출발해야 했고, 마감을 땡기기 위해서 힘든 한주를 보냈다. 가끔 태사랑이나 베트남 그리기에 가서 정보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한주동안 일에 치여 살았다. 

특히 출발 당일은 더욱 정신이 없었는데, 새벽에 일어나서 짐싸고, 회사 출근해서 나머지 기사를 썼다. 점심을 대충 먹고, 은행에 가서 환전을 하고, 보험을 들고 다시 회사로 와서 면을 짜고 교정을 봤다. 그렇게 하다보니 어느덧 4시가 되었다.

인사를 하고, 서울역에 가서 수속을 밟고,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에 가서 출국심사를 받고, 면세점에 가서 담배를 사고, 라운지에서 저녁을 먹었더니 출국 시간이었다. 

여행을 간다는 두근거림은 없었다. 다만 빨리 호텔에 들어가서 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1. 수용소에서 잠을 자다.
5시간 동안의 비행은 매우 힘들었다. 비상구좌석을 확보해 다리를 쭉 펼수 있었지만, 일주일간의 피로가 누적되었는지 쉽게 잠들지 못했다. 기내에서 차디 찬 기내식을 먹고, 물과 감귤쥬스를 번갈아 마시면서 5시간을 말 그대로 버텨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말하라면 호치민으로 향하는 그 5시간이라고 말하겠다.

호치민 탄손누트공항에 도착한게 베트남 현지시간으로 12시가 넘어서였다. 빨리 호텔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던 나는 열심히 달려 입국장을 나왔다. 그런 나를 반긴것은 현지의 습한 더위보다 먼저 택시 기사들이었다. 

호치민 공항의 악명높은 택시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상당히 놀라웠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달려오는 광경은 무서울 정도였다. 

나는 마일린과 비나선 택시를 타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택시에 엄연히 다른 회사 이름이 붙어있음에도 자기 택시가 마일린택시라고 우기는 기사도 있었고, 자기가 더 싸다며, 마일린보다 더 크다고 말하는 기사도 있었다. 정중히 거절해도 막무가내로 내 가방을 잡고, 내 손을 잡고 하면서 자신들의 택시로 나를 이끌었다.

그들을 뿌리치고 2층 출국장으로 올라갔다. 2층에 가니 마침 승객을 태우고 온 비나선 택시가 들어와 그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 바우쳐를 보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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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공항 1층 입국장에서 아무 택시나 타지 말라고 합니다. 그 택시들은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택시일 가능성이 높으며, 일부는 택시가 아니면서도 택시 영업을 한다고 합니다.

미터를 사용하지 않거나, 조작된 미터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으며, 목적지까지 요금을 합의해도 나중에 딴 소리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호치민에서 가장 안전하게 탈 수 있는 택시는 마일린과 비나선에서 운영하는 택시입니다. 
1층 입국장에는 바가치 택시기사들의 극성때문에 잘 못들어오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입국장을 나와서 맨 왼쪽 끝으로 가면 택시회사 직원이 있으며, 이들에게 목적지를 말하면 택시를 불러준다고 합니다.

또는 2층 출국장으로 가서 다른 승객이 타고온 택시를 탈 수 도 있습니다. 

최근 비사선과 마일린을 모방한 짝퉁 택시도 있다고 하네요. 도색과 철자를 비슷하게 해서 말이죠.

택시 번호(38.38.38.38.38) 또는 (38.27.27.27.27)를 확인하시고 탑승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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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첫날 예약한 호텔은 199호텔이었다. 호치민 공항 인근, 2km 이내에 위치한 호텔로, 조금 열심히 걸으면 택시 안타고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 호텔을 선택한 것은 두가지 이유에서였는데, 첫 째는 여행 2일차(토요일) 오전에 공항 인근에서 인터뷰를 잡았기 때문이다. 

즉 도착 첫날 여행자 거리라고 하는 데탐스트릿에 숙소를 잡으면 다음날 오전 다시 공항쪽으로 나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하기 때문에, 애초에 공항 인근에서 하루를 보내고, 인터뷰가 끝나면 그 때부터 데탐으로 이동해 본격적인 여행을 즐기자고 생각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출발 전 유일한 결정이었다.

호텔예약은 아고다에서 진행했다. 3성급임에도 20달러도 안되는 가격(17달러)이 마음에 들었고, 후기들을 읽어보니 "이만한 가격에 이런 방은 얻을 수없다"는 후기가 있어 결정했다.

위치, 가격, 성급 모든 부분에서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서 카드로 취소불가 특가요금을 결제했고, 바우쳐를 뽑아서 택시 기사에게 보여줬다. 

택시기사는 바우쳐를 보더니 단숨에 OK를 외치더니 택시를 몰고 공항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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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공항은 택시가 공항에 들어올 때 비용을 지불합니다. 톨게이트 비용 같은 개념인데, 보통 들어올때 타고 오는 사람이 부담합니다. 즉 입국한 사람은 택시가 지불하는 공항이용료를 낼 의무가 없습니다. 마일린이나 비나선은 이 부분을 확실하게 지킨다고 합니다.

반면에 일부 택시에서는 이 요금을 청구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금액은 5000동(한화 250원) 정도이니 말싸움이 싫으시면 그냥 지불하는게 편할것 같습니다. 

물론 전 안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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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을 나서자 마자 구글맵을 켰다. 공항의 위치와 호텔의 위치는 알아뒀으니, 만약 택시 기사가 돌아간다면 단숨에 차량을 정지시킬 생각이었다. 

사실 나는 조금 겁을 먹고 있었다. 그 전에 수많은 여행기를 읽으면서 "오토바이 2인조 남성이 뒤에서 가방을 들고 가니 꼭 어깨에 교차해야 한다"던가, "길거리에서 젊은 아가씨가 불러서 갔더니 낭심을 꽉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해서 털어갔다"라던가, 택시가 빙글빙글 돌아서 항의했더니 갑자기 험악한 사람 몇이 달려들어 폭행을 당했다" 같은 글을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첫날 이동 루트는 숙지해놓은 상황이었다. 몇 번째 교차로에서 좌회전 하고, 거기서 얼마를 가야 하는지 같은 거 말이다. 그러고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글맵까지 킨거다. 혹시 이놈이 나를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택시는 금방 달려 호텔앞에 날 내려줬다. 미터기에 찍힌데로 돈을 주고, 택시에서 내리자 택시는 어둠의 뒤편으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눈 앞에 건물을 봤는데,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눈 앞에 있는 건물은 호텔이라기보다는 수용소 같은 느낌이 강했다. hotel 이라는 간판도 없었고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무엇보다 건물에 있는 수 많은 창 중 불켜진 창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당황하고 있는데, 길 건너편에 있던 아저씨 세명이 나에게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족을 쳐다보니, 런닝셔츠에 반바지만 입은 세명의 베트남 아저씨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면서 자신들에게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들에게서 거리를 두기 위해 큰 길가로 나갔다. 큰 길가로 나가서 구글맵을 키고, 호텔 바우쳐에 적혀있는 주소화 대조하려고 생각했는데, 당황했기 때문인지 자꾸 오타가 나서 검색이 안되고 있었다. 

호텔 앞 거리는 어두었고, 조용했으며, 가끔씩 지나가는 오토바이 몇대와 나를 부르는 무서운 아저씨들 만이 있었을 뿐, 여행자를 안심시킬 수 있는 징조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공항으로, 사람들이 많은 안전한 공항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택시를 잡아 데탐스트릿으로 가야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용소 철문을 몇번 두르려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고, 무서운 아저씨들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빨리 호텔에 들어가 쉬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공항까지 뛰어가면 얼마나 걸리는지를 머리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수용소 주차장에서 사람이 하나 걸어나왔다. 또 다른 무섭게 생긴 아저씨였다. 나는 순간 저 사람은 날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은 내가 예약한 호텔을 알꺼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를 불러 바우처를 보여주었다.

호텔 바우쳐를 본 그는 안쪽에 대고 뭐라뭐라 소리를 쳤고, 그 순간 수용소에 육중한 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수용소가 호텔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안내를 받아 수용소 로비 같은 호텔로비로 들어갔고, 수용소 간부같은 호텔직원에게 체크인 해서 수용소 독방같은 호텔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당초 호텔에 체크인 하면, 번개같이 샤워를 하고, 호텔 인근 편의점에서 맥주와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서, 이국의 야경을 즐기며 맥주를 한잔 하고 잠잘 생각이었지만.

수용소 호텔은 그런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나는 샤워를 하고, 문을 잠그고, 티브를 틀어놓고서야 침대에 들어갔다. 3시 넘어서 겨우 잠들 수 있었다. 

호텔에 들어오면서 외부의 공포에서 나를 격리할 수 있었는데, 호텔에 들어오니 이제 호텔 자체의 공포가 나를 휘감았다. 

아미타빌 이후로 건물에 대해 공포심을 느낀것은 처음이었다.

사진이 엄청 양호하게 나왔다. 회색톤의 엄청 우울한 느낌의 간지였다. 수용소 고위간부가 사용하는 독방의 느낌이랄까?

덧글

  • kiya 2012/07/19 18:53 #

    수용소라는 표현, 재밌네요.
    여행기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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